[2017 New York]
#2 뉴욕 맨해튼 -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
요즘 정신없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바빴던 덕분에 오랜만에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다녀온 지 일 년 반이나 지난 뉴욕 여행기부터 조금씩 소개해볼까 합니다.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Manhattan)에서 또다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높은 마천루들 사이에서 자리 잡은 여러 화려한 광고판들과 뉴요커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항상 붐비는 이곳은 세계 경제의 최고 중심지 다운 활기가 넘치는 장소이기도 하죠.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와 세븐스 에비뉴(7th Ave., 7번가)가 겹치는 장소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뮤지컬과 유수의 대기업 광고들이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맨해튼의 중심답게 지하철로 손쉽게 이동이 가능합니다. 지하철 N, Q, R 라인을 타실 경우에는 49 St. 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시면 되고, 아예 역명에 Times Square가 붙어있는 Times Square, 42 St. 역의 경우에는 1,2,3,7, S 라인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물론 뉴욕 지하철의 운행 여부는 그때그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바뀌므로, 뉴욕의 대중교통에 대해 소개한 지난 포스트를 참조하여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1 역사: Great Kill, Longacre Squre, Times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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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당시에는 롱에이커 스퀘어(Longacre Squre)였던 타임스 스퀘어의 모습. 출처: https://untappedcities.com/2015/04/08/today-in-nyc-history-in-1904-longacre-square-renamed-times-square/
본래 타임스 스퀘어가 있던 자리는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맨해튼에 자리 잡았을 당시에는 조그만 세 개의 시냇물이 흘러가다가 커다란 수로를 만든 곳이었고(Great Kill, 네덜란드어 Grote Kill), 이곳은 물고기와 물새들로 유명한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지면서, 조지 워싱턴 아래에서 뉴욕 시민군의 장군으로 일하던 존 모린 스콧(John Morin Scott)이 이곳에 집을 세워 농장으로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다시 이 자아소에 사업가 존 제이콥 아스토르(John Jacob Astor)가 이곳에 여러 호텔을 짓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중심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1872년에는 이곳이 뉴욕의 마차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런던의 롱 에이커(Long Acre)의 이름을 따 롱에이커 광장(Longacre Square)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점차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 지역이 발전하면서 북쪽에 자리 잡은 이 지역에는 여러 저급 엔터테인먼트 산업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브로드웨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첫 극장인 올림피아(Olympia) 극장이 이곳에 19세기 말에 자리 잡습니다.
1904년 4월 8일, 뉴욕타임스가 42번가에 옮겨 자리 잡으면서, 지하철역 또한 건설이 추진되며 공식적으로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불과 3주 후 타임스 스퀘어 최초의 전자 광고판이 붙게 되고, 우리가 아는 타임스 스퀘어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뉴욕 타임스는 1913년 좀 더 넓은 한 블록 옆의 빌딩으로 옮기고 1961년 매각되었는데, 지금은 원 타임스 스퀘어(One Times Square)라는 이름으로 매년 마지막 날 Times Square Ball drop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타임 스퀘어는 급격히 발전하여 여러 극장, 콘서트홀, 고급 호텔 등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광고 산업 또한 발전하여 1920년대에 이미 당시 돈으로 8500만 달러에 달할 정도의 규모로 가장 큰 전광판을 빌리기 위해서는 1개월에 9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까지 여러 대배우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였는데,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도 그중 한 명입니다. 물론 범죄와 부패, 도박 등 어두운 측면도 많이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은 극장이 파산하고 치안이 악화되었으며 전쟁의 암울함을 버텨 나갔으나, 1945년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타임스 스퀘어에 모여 승전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전후 1980년대까지 뉴욕의 치안이 악화되면서 타임스 스퀘어 또한 한동안 암울한 상황을 겪기도 하였으나, 90년대에 이르러 여러 유서 깊은 극장의 소유권을 뉴욕주 정부가 인수하여 비영리재단을 형성함으로써 다시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고, 여러 브로드웨이 공연들을 혁신하면서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해갑니다. 특히 90년대 중반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Giuliani)가 이 지역의 쇄신을 추진하면서 암울한 모습의 유산과 저급 숙박시설, 포르노 극장 등을 철수시키고 다시 리모델링을 이루어냅니다. 특히 월트 디즈니 사에서 뉴 암스테르담 극장(New Amsterdam Theatre)을 인수하여 리모델링하는데 성공하고, 과거의 포르노 극장을 마담 투소 박물관으로 바꾸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유명 관광지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이후 많은 수의 커다란 네온사인과 LED 광고판이 늘어선 모습은 뉴욕의 상징적인 심벌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09년 이후에는 현재 42번가~47번가에 이르는 지역을 도보 전용 구역으로 바꾸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면 하루 방문객이 36만 명에 이를 정도로 붐비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여행객들이 뉴욕의 랜드 마크로 반드시 한 번쯤 들르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2 타임스 스퀘어의 모습, 2017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