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New York]
#0 프롤로그: 개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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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작년 4월 방문하였던 뉴욕 여행에 대하여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의 경제 수도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욕은 워낙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 및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뉴욕 시(New York City)의 인구만 약 9백만명, 광역권의 인구는 약 2천만명으로 땅이 넓어 인구밀도가 낮은 편인 미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권입니다. 21세기 현재 뉴욕은 사실상 세계의 경제적인 수도이며 수많은 볼거리들과 멋진 공연들, 그리고 역사적인 장소들로 인해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는 매력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뉴욕 여행은 약 9일간의 기간 동안 뉴욕 시 한 군데만을 돌아보았기 때문에 좀더 집중적인 소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소개할 곳이 많고,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많기 때문에 프롤로그에서는 뉴욕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와 지리,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만 리뷰하고 본격적인 여행기는 천천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뉴욕의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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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미국 북동부 뉴욕 주(State of New York)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퀸스, 스테이튼 아일랜드 다섯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는 대도시입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빌딩숲으로 뒤덮여 있는 뉴욕의 중심 지역이 바로 맨해튼이며 대부분의 볼거리도 이 곳에 몰려 있어 저의 이번 여행은 숙소를 포함하여 대부분 맨해튼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외적으로 입국 관문인 퀸스에 자리잡은 JFK 공항이나, 무료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관람하기 위해 들렀던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말이죠.
2) 뉴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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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앵글로색슨들이 붙인 영국계 이름인 뉴욕(New York, 잉글랜드 북부지방의 도시 요크York를 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곳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레나페(Lenape)족이 거주하던 땅으로 레나페호킹(Lenapehoking)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현재 뉴욕의 권역을 거의 다 포함하는 개념으로, 지금의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롱아일랜드 서부 지역인 브루클린, 퀸즈, 맨해튼, 브롱스, 로어 허드슨 밸리를 전부 일컫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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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6세기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여 여러 탐험가들이 북미 대륙을 방문하게 됩니다. 처음 이곳을 발견한 사람은 의외로 프랑스 군주의 후원을 받던 피렌체(이탈리아)의 모험가 지오반니 데 바라자노(Giovanni da Verrazzano)로, 1524년 그는 이곳을 프랑스의 영토로 선언하고 누벨 앙골렘(Nouvelle Angoulême)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이 되지 않아서인지 한동안 여러 나라의 모험가들이 제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는데 1525년 포르투갈의 에스테반 고메스는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의 명을 받아 이곳에 도착하여 히우 데 산 안토니오(Rio de San Antonio)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 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의뢰를 받은 영국인 헨리 허드슨은 지금의 허드슨 강과 그 주변을 탐험한 후에 근처 지역을 뉴 네덜란드(Nieuw-Nederland (New Netherland))라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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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처음 유럽인이 영구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624년 네덜란드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1625년에 도시의 형태를 갖추어 성벽과 요새를 건설하고 이곳을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라 명명하였으며 바로 이 지역이 지금의 맨해튼 섬 남부,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에 해당하는 곳이 되겠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임명된 총독 피터 미누이트(Peter Minuit)는 이 지역을 당시 원주민 레나페 족의 씨족이었던 카나르시(Canarsie)에게 60 길더(현재 가치로 약 1000 달러, 우리돈으로 백만원 남짓)를 주고 구입하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전설로는 24달러 어치의 유리구슬을 주고 구매했다는 말도 있는데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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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로서 뉴암스테르담은 천천히 발전하였으나, 1664년 이곳에 쳐들어온 잉글랜드군에게 총독이 항복함으로써 이후 영국 왕위에 오르나 당시엔 요크 대공이었던 제임스 2세의 작위를 따 뉴욕(New York)으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1667년 브레다 조약에 의해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이 마무리되면서 뉴욕은 지금의 이름과 함께 영국의 식민지로서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후 뉴욕은 연이은 네덜란드와의 전쟁과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분쟁, 수차례 발생한 전염병 등으로 인해 많은 인구가 죽어나가지만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원주민인 레나페족이었습니다. 1700년에 이르면 레나페 족은 불과 200명만이 살아남으며, 이주민들도 황열 등의 전염병으로 1702년 한 해에만 인구의 10%가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하에 뉴욕은 북미의 주요 무역항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며, 불명예스럽지만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하기도 하였습니다. 1754년에는 영국 국왕 조지 2세에 의해 콜럼비아 대학이 로어맨해튼 지역에 설립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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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스탬프 법(Stamp Act)문제로 최초로 소집된 의회가 뉴욕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전개된 미국 독립 전쟁에선 뉴욕 또한 전화(戰火)를 그대로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전투인 롱아일랜드 전투가 1776년 현재의 브루클린 근처에서 벌어졌으며, 당시엔 영국군이 승리하여 이곳에 군사 요새를 건설하기도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전쟁은 영국의 패배로 끝나고, 1783년 영국군은 이곳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1785년에 미국 최초의 의회가 뉴욕에서 열렸고,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이곳에서 취임을 하게 됩니다. 1790년에는 필라델피아를 넘어 뉴욕이 미국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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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많던 노예제도는 점차 순차적으로 철폐되어 1827년에 이르러 뉴욕에선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1840년에 이르면 자유 흑인 인구가 16000명에 달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하죠. 또한 19세기에 이르면 뉴욕은 무역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주요 관문으로서도 기능하게 됩니다. 1830-1840년대에는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한 여러 문학가들이 등장하였고, 1857년에 이르면 미국 도시의 최초 대형 공원인 센트럴 파크가 윤곽을 드러내게 됩니다.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1860년대까지 20만명에 달하는 이민자(당시 뉴욕 인구의 1/4에 달하는)가 오기도 했고, 독일에서도 많은 수의 이민자가 도달하여 1860년 당시 뉴욕 인구의 1/4은 독일계였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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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이르러 뉴욕은 미국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의 중심지로 점차 발전하게 됩니다.1898년에는 당시까지 분리된 도시였던 브루클린, 퀸즈, 리치몬드 등이 통합되어 현재의 모습과 유사하게 바뀌었고 1904년에는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합니다. 미국의 성장과 함께 뉴욕은 세계의 경제 중심지가 되어 1920년대에는 런던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시가 됩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전후에는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위상과 걸맞게 뉴욕 역시 계속된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1952년에는 유엔 본부가 뉴욕에 설치되어 세계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위상도 가지게 되어 기존 유럽 대륙이 가지고 있던 헤게모니 또한 옮겨오게 됩니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산업 구조의 변화로 한동안 경제적인 어려움과 범죄율의 상승으로 문제를 겪기도 하나, 금융 산업의 발전과 개혁으로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 및 범죄율 문제는 거의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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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뉴욕은 2001년 세계무역센터가 비행기로 공격받는 초유의 사건인 9.11 테러를 겪으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중동 정세의 변화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세계 정치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도 했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2018년 현재, 뉴욕은 여전히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으로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