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초단기 3박 4일 뉴욕여행 2일차

이제 뉴욕 여행 2일차가 되었습니다. 전날 10시에 잠들었고 6시 안 돼서 잠에서 깼어요. 의외로 시차적응을 잘 했고, 7시 30분쯤 숙소를 나섰습니다. 뉴욕의 랜드마크 중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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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진하는 황소

가는 길에 월가를 들러보기로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곳이 그 월가란 말인가? 아침 8시쯤이라 돌진하는 황소에는 10명 안 되는 사람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변 노점상에서 황소 기념품을 구경하다가 휘황찬란하게 날리는 미국 국기를 뒤로 하고 배터리파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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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여신상

저는 자유의 여신상 공식 홈페이지에서 크라운까지 가는 표를 예매했고 QR 코드까지 받아서 따로 표를 예매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탑승 입구에 안내자분이 크라운까지 가는 걸 확인하더니, 매표소에서 손목에 띠지를 받아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표 예매 장소까지 2분 밖에 안 걸리니 후딱 다녀오라고 해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분홍색 띠지와 티켓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일반 티켓과 다른 줄로 안내되어 가방 검사까지 거친 후에 페리에 드디어 탑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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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 중 감사했던 게 일기 예보는 눈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3일 동안 날씨가 정말 좋았고 이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당연히 3층 야외로 향했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맨하튼 풍경이 멋지더군요. 그리고 드디어 자유의 여신상이 가까이 눈앞에 보이더군요. 그래, 이걸 보러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이거였어, 하며 리버티 섬에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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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까지 가려면 백팩은 사물함에 보관해야 하는데, 이때 25센트 동전이 필요해요. 저는 현금이 하나도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입구 안내원이 동전을 빌려주더라구요. 갈 때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신발 때문에 이날 역시 걷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크라운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크라운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몇 칸 올라가던 중, 과감하게 중단하고 다시 내려왔어요. 자유의 여신상 시점에서 보는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가 궁금했는데, 신발이 참... 속상했어요.

그렇지만 2019년 지어진 박물관이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건축가인 바르톨디, 당시 작업자들의 모습, 여왕 발톱 보수 과정 등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었어요. 기념품 샵에 들렀는데 볼펜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디자인도 참 예뻐서 선물용으로 몇 개 사고, 엠마 라자루스의 시가 새겨진 캐리어 네임택도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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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해안에 지쳐 쓰러진 가난한 족속들을. 머물 곳 없이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나는 황금빛 문 옆에 서서 횃불을 높이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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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봤던 이 시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았고 그래서 여기에 너무 오고 싶었는데, 그 시가 새겨진 기념품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몇 개를 챙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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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일정 중에 그나마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랜드마크에서 식사를 하는 건데요. 이 섬에 푸드코너가 조그맣게 있어서, 근데 또 마땅히 먹을 만한 게 버거밖에 없어서 ㅎㅎ 어제의 악몽을 딛고 버거를 먹었는데 나름 맛있었어요! 비둘기들 몇 마리가 식당에 들어와있어서 그야말로 섬 풍경과 자연과 동물과 하나되어 뜻깊은 식사를 마무리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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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 바로 앞에서 원없이 사진을 남기고 이제 이민자들이 입국심사를 받았던 장소인 엘리스섬으로 향했습니다. 엘리스섬은 눈물의 섬, 희망의 섬이라고 불린다고 해요. 미국 입국에 성공한 자들에게는 희망의 땅이었겠지만, 그중 소수는 거부를 당해서 다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거친 항해를 거쳐 이곳에서 심사를 기다리며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이민자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해서 와본 섬이었는데, 자유의 여신상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ㅎㅎ 박물관이 단촐하니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이민자들의 표정이 정말 밝았다는 거였어요. 어린 아이들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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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메모리얼 기념관

4시간 동안 후회 없이 머물고 이제 911 메모리얼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기념관 앞 야외에 두개의 대형 폭포에서는 처연하게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었구요. 검은 대리석에는 희생자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어요. 네개의 면을 천천히 돌다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딱 들어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긴 세로 구조물 '라스트 컬럼'이었는데요. 세계무역센터 붕괴 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기둥이었다고 해요. 여기에 경찰, 구조대원들의 추모 메시지가 남겨져 있구요. 오토바이가 죽 늘어서 있길래 웬 오토바이 컬렉션인가 했는데, 당시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워 경찰과 구조대원들이 오토바이를 통해 현장에 접근했는데, 그때 사용되었던 실제 오토바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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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희생자들의 사진과 민감한 자료들이 포함된 사진 촬영 제한 구역이 있는데요. 당시 사건들을 분 단위별로, 또 알카에다까지 911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정보를 전시해놓은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소방관들, 조종사들,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상황 속에 정신을 붙잡고 "여객기가 납치됐다, 상황이 좋지 않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음성을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한 소방관은 제발 현장에 가지 말라는 아내의 애원에 "자기야. 이게 내 일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으로 떠났다던데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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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에 관련된 정보들도 객관적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희생자들의 추모 자체에 온 정성을 쏟은 기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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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클린 브릿지

먹먹한 마음을 안고 바로 앞에 오큘러스에 짧게 들린 뒤 브루클린의 덤보로 향했습니다. 한 댄스팀이 덤보 스팟 명소에서 춤을 추면서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짧게 사진을 남기고 브루클린 브리지 보행로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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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저항없는 감탄이 두 번 나왔는데 하나가 탑오브더락, 그리고 바로 여기,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보는 맨하튼 야경이었습니다. 와... 우와... 둘째날이라 발이 더 아팠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감탄을 연발하게 만드는 광경이었어요. 맨하튼 뿐만 아니라 이스트강, 맨하튼 브리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보니, 정말 너무 멋졌어요. 고딕 양식의 브리지 타워도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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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건넌 후 숙소까지 걸아가면서 볼 소소한 장소들을 정해뒀었는데 다음 날 체력 보존을 위해 숙소로 바로 가는 지하철을 탔어요. 꿈의 자유의 여신상이 현실이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브루클린 브리지 다리를 건넌 경험도 특별하게 남았구요. 글을 쓰다보니 새록새록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이제 마지막 3일차 일정을 준비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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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2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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