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2일차에 굉장히 부지런히 돌아다녔기 때문에 3일차에는 한국에서 예약한 뮤지컬 알라딘 일정에 맞추어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타임스퀘어 일대만 둘러보는 단순한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원래는 이날도 센트럴파크에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갈 날씨가 아니었어요. 다행히? 날씨가 더러운 덕에 미술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네요. ㅎㅎ
<3일차 일정>
: MOMA 투어 - 점심(SIMÒ PIZZA) - MOMA 재입장 - 엠엔엠즈 - 허쉬스 초콜릿 월드 - 저녁(Empire Steak House) - 뮤지컬 알라딘 - 타임스퀘어 야경
늦잠을 자다가 모마 투어에 늦을 것 같아서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아침을 때우려고 모마 근처 스타벅스 지점에 왔습니다.
초코 크로아상과 말챠라떼를 시켰는데 여기 지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문이 진짜 늦게 나와요. 그리고 태어나서 마셔본 말차라떼 중에 가장 맛이 없었습니다..이후에는 스타벅스는 안 갔네요. 😅
모마 역시 한국에서 업체를 통해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추상미술이 중심이 된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고 방대하여 투어가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 듯 싶어서요.
투어에서는 피카소, 몬드리안, 잭슨 폴록 등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과 전시는 잘 짚어주고 설명해 주십니다. 다만 투어가 1시간으로 너무 짧아서 여유있는 진행은 아니었어요. ㅠ
모마 정도 되는 미술관이라면 최소 한시간 반은 설명을 들어야 알맞다고 생각해서 그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투어 때 설명을 들은 그림 몇 점을 보여드리자면
모마 역시 반 고흐의 대표작이 가장 많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고흐가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이후 요양원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자신이 느끼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을 즈음 탄생한 그림입니다.
야수주의 마티스와 입체주의 피카소의 대표작은 큼지막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그림들이 세상을 진실되게 묘사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마티스는 색채를, 피카소는 형태를 객관적인 대상의 재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그림 모두에서 인물들이 입체감에서 벗어나 평면화, 추상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티스 그림의 배경은 푸른색 녹색만 풀어놓아 현실의 공간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그림들이 색채도 형태도 어떤 대상을 묘사하지 않은 채로 자기 주장만 과도한 것은 이 두 분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ㅎㅎ
피카소는 이 두 그림의 전시가 오히려 맘에 들었습니다. 피카소는 1921년 같은 해에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그림을 완성합니다.
구상과 추상이라는 대상의 표현에 있어 양 극단의 방법을 모두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았던 피카소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두 그림은 복도의 양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걸려있다고 하네요.
그림 자체보다 이런 재치있는 큐레이팅 덕에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감상했습니다.
모네의 아름다운 수련도 전시실 한쪽 벽면 전체에 걸쳐 걸려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마에서 역시 앤디 워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예술의 소재라고 생각지도 못 했던 일상의 캠벨 수프를 빽빽히 채워 전시함으로써 미술가의 독창성은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대중성이 채워넣게 되었습니다.
실크스크린을 통해 복제된 캠벨 수프들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미디어에 의해 복제되고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원본 또는 개인의 인격에 대한 고찰은 의미없는 질문이 되겠지요.
모양도 크기도 동일한 캠벨 수프 이미지들의 연쇄를 통해 "보시는 바와 같이 현대에서는 나는 물론 당신도 이런 이미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정하라"라고 워홀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홀이 개인의 인격을 배격한 채 철저히 기계적인 작업의 결과물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2024년 지금에도 워홀의 주장을 과연 반박할 수 있을까? 캠벨 수프들을 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투어를 잘 마치고 나서 모마 근처의 피자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왔습니다. 모마에서 최대한 가깝고 구글점수가 높은 곳으로 골랐어요.
무난한 피자를 파는 곳이었고 꽤 맛있었습니다. 미국식 피자는 아니고 토마토소스 치즈 바질이 전부인 깔끔한 나폴리식 피자입니다. 물론 나폴리에서 먹은 것만큼 맛있지는 않고요. ㅎㅎ 도우도 쫄깃하고 담백해서 물리지 않고 한 판 다 먹었습니다.
여기는 맛도 괜찮지만 혼자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8개가 있어서 저렴하게 혼밥하기 좋은 곳입니다. 유명한 할랄가이즈도 근처에 있으니 모마 재입장을 원하시는 분들은 간단히 먹고 들어가셔도 좋겠습니다.
모마는 미술 작품도 훌륭하지만 중정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합니다. 식사 후나 미술관 관람 도중 지칠 때 쉬어가기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정원과 미술관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혼자서 오디오 가이드를 병행하며 투어 때 지나친 작품들을 찬찬히 관람했습니다. (모마 홈페이지에 들어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미술은 어려워서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명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알고 난 이후는 오히려 편합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제목도 없거나 대충인 경우가 태반이어서 내 맴대로 자유롭게 보고 느끼면 되거든요. 😄
모마에는 역시 모더니즘 이후의 순수 추상회화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형태와 색채가 모두 사라지고 사각형만 남아있는 절대주의 말레비치의 하얀 사각형입니다.
화면에서 모든 대상은 사라졌지만 말레비치는 저 화면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형이 가능한 적극적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무한한 창조가 가능한 사각형의 공간이라 하면..사각형의 격자형 도시개발을 통해 눈부신 현대 도시를 이룩해낸 뉴욕의 모습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웃음이 났습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이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건너와서 뉴욕의 활기찬 모습과 부기우기 재즈 음악을 듣고 표현한 작품인데요.
몬드리안의 작품은 보통 앞선 빨강과 파랑의 구성과 같이 삼원색과 수직 수평의 단순함 속에 화면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속의 화면은 훨씬 더 복잡한 선과 색의 교차 속에 역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욕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이 도시의 화려함과 시끄러움 다양함을 처음 접하면 모두 문화 충격에 빠지니까요. ㅎㅎ
미니멀하고 간결한 화면 속에 일종의 절대적인 정신성을 실현하고자 해왔던 몬드리안도 뉴욕의 생기발랄함과 요란함 앞에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나 싶어 재미있던 작품이었습니다.
떨어지는 미사일을 립스틱으로 표현한 재치있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모마 투어를 11시에 시작해서 5시에 나왔으니 점심식사와 쉬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4시간 반 정도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 언급드린 작품은 정말 몇 개 안 되고 당연히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투어를 신청하거나 오디오가이드를 들으셔도 좋고 천천히 작품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셔도 보람찬 시간이 되실 것 같습니다.
MOMA를 알차게 둘러보고 나서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타임스퀘어 부근을 둘러보았습니다.
타임스퀘어는 번쩍이는 광고판의 야경이 가장 큰 볼거리겠지만 낮에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두 개의 초콜릿 빌딩이 있습니다.
먼저 M&M'S New York입니다.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초콜릿이 엄청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색깔별로 기념품이 쫙 깔려있어서 구경할 맛이 났습니다.
관광객들은 굳이 초콜릿을 사지 않더라도 예쁜 색감 때문에 사진들을 많이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근처에는 Hershey's Chocolate World도 있어서 함께 엮어서 들리기 좋습니다. 상품 디스플레이는 M&M'S가 훨씬 예뻐서 구경하기에는 그쪽이 더 좋았지만 여기는 할로윈을 겨냥한 초콜릿들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방문시마다 나눠 주는 요 무료 초콜릿이 별미입니다. 이상하게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ㅋㅋ 그래서 제 기준은 허쉬 초콜릿 승입니다. ^^
이후 타임스퀘어 방문할 때마다 들러서 하나씩 받아 먹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두 건물을 구경한 후에 예약한 식당으로 저녁 먹으러 갔습니다.
사실 뉴욕 스테이크도 뉴욕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미션이잖아요? 보통 브루클린의 피터루거나 갤러거 스테이크의 런치세트를 많이 드시는데요.
저는 여기가 구글평도 좋고 메뉴 중에서 'Pre-Theater Menu'라고 이름 그대로 뮤지컬 보러가기 전 해피아워 시간에 3코스를 약 60달러에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와봤습니다.
스프도 맛있었지만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가 엄청 맛있었습니다. 와일드한 육즙 넘치는 고기 고기 그 자체의 맛이었습니다. 소스도 필요없이 고기 자체의 맛만 돋보이도록 소금과 후추만 대충 찹찹 뿌려 먹어도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였습니다. 양도 꽤 많아서 디저트 티라미수는 포장해서 내일 아침 조식으로 먹었어요.
그리고 서버분들이 최근 한국인 많이 온다고 한국어로 인사도 해 주시는 등 엄청나게 친절하시기 때문에 추천드릴만한 레스토랑 같습니다.
3코스 식사에 콜라 추가하고 팁까지 해서 80달러 정도 나왔던 것 같네요.
이제 대망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보러 왔습니다. 알라딘/라이온킹 중에 엄청 고민을 하다가 둘 다 너무 보고싶다면 싼 걸 보자해서 알라딘을 골랐습니다. ㅋㅋ
저는 오케스트라석 U열 103번 좌석이었는데요. 1층맨 뒷열이지만 사진에서 보시듯이 넓은 시야를 보장합니다. 특히 끝자리라 오른쪽에는 사람이 없어서 다리를 자유롭게 뻗고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알라딘 뮤지컬은 정말 판타스틱했어요. 윌 스미스 주연의 실사 영화도 이미 본 상태에서 이것보다 음악이나 무대를 더 잘 연출할 수가 있나..?싶었는데 'Arabian Night' 에서 지니와 앙상블의 완벽한 합을 보이는 노래의 웅장함, 진귀한 안료는 다 부어 넣은 듯한 의상의 화려함과 이국적인 색감 등등 보는 재미 듣는 재미에 브라보가 절로 나옵니다. 지니 배우분의 원맨 슈퍼캐리를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요.
얼마나 좋았냐면 한국 돌아와서 잠실에서 하는 알라딘 공연을 부모님 모시고 가려고 예약했습니다. ㅋㅋ
다만 시차 적응을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루즈한 파트는 조금 졸리더라구요. 뮤지컬은 여행 후반에 보시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뮤지컬을 즐겁게 보고 이제 오늘의 야경 픽인 타임스퀘어 야경을 보러갑니다.
구글맵에서 파서 뒤피 스퀘어 혹은 TKTS 뮤지컬 할인 부스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계단 같은 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전부 TKTS 부스 맨 꼭대기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광고판의 광고들이 마치 유튜브 쇼츠처럼 어찌나 형형색색, 시시각각으로 변하던지 뮤지컬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었습니다.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맘에 드는 컬러와 내용이 어우러진 광고들의 조합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자연광에 신앙심을 느꼈던 옛 사람들처럼 이곳 타임스퀘어에서는 무수한 인공광의 광휘와 색채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히 세계의 광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화려함입니다. 맨해튼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뉴욕을 처음 본 순간과 함께 가장 뉴욕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네요.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마지막으로 타임 스퀘어를 한 번 더 찍어줍니다.
영화에 나올법한 뉴욕의 밤거리를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서 다음날을 준비했습니다. 4일차 후기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