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90년대 쌍둥이 건물 무역센터, 차이나타운 백년 식당 놈와, 리틀 이태리 로시 잡화점

90년대 뉴욕 여행 중 찍은 사진이 있나 찾아보니 어렵게 몇장 나옵니다. 그때는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고, 디카도 없고, 필름 카메라도 집집마다 구비 물품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이때 카메라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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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진 보면 어쩐지 으스스하고, 슬프고, 인생무상스럽고 그렇긴 합니다.

당시 뉴욕에서 최고의 고층 빌딩이던 쌍둥이 건물, 뉴욕 무역센터 전망대입니다.

처음 생길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누르고 세계 최고층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시카고의 최고층 빌딩군이 들어서면서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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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대들에게는 아마도 2001년 9.11 비행기 테러 당한 그 건물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모습이라 얼굴이 앳되어 보이는 것도 슬프고, 이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슬픕니다.

이 사진은 유튜브에서 발견한 2000년도 영상. 쌍둥이 건물 중 한곳만 전망대가 있어서 보이는 풍경은 다 똑같았네요.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쭉 보이는 풍경입니다. 그때도 당연히 맨해튼은 전세계에서 최고의 마천루가 즐비했지만 지금은 아예 스카이라인이 확 달라졌지요.

그로부터 1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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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진 찍었던 때도 IMF 이전이었는데 몇년 후 달러가 그렇게 미친듯이 올라갈 줄 몰랐었지요.

버스정류장 맞은 편의 한 건물. 70년대 지어진 한국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너무 비슷해 보여 기시감에 깜짝 놀랍니다. 일본에는 옛날 시영 아파트가 아직도 이런 형태로 많이 남아있습니다. 뉴욕에서는 비교적 보기 드문 건축물 형태가 아닌가 싶네요.

맨해튼 남쪽으로 올수록 이런 형태의 건물들이 많아 보입니다. 개발은 원래 남쪽부터 먼저 했다는데 그만큼 재개발도 먼저 했다는 거 아닌가 싶네요.

차이나타운 어느 건물. 황씨 종친회라는 표식이 이민생활의 뿌리가 어디에 있나 보여주는 듯합니다.

뉴욕 차이나타운은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작지만 평지에 있어서 그런지 좀더 구석구석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뉴욕 100년 식당 중 아시아 식당으로는 유일한 곳 아닐까요? 놈와 티팔러. 한자어는 남화인데 놈와로 읽으니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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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교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산동출신들이 많지만 전세계적으로도 화교라면 복건성, 광동성 출신들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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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차이나타운의 주체는 이런 화교와 그 후손들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 본토 이민자들로 교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차이나타운의 한자도 아직까지는 예전 번체가 주류이지만 점점 간체가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전세계 어딜 가나 정통 중국계 식당에서 딤섬과 볶음밥은 가장 실패 확률이 낮아서 차이나타운 아무데나 가도 되는데 굳이 놈와에 온 까닭은 100년 식당 이런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이 식당을 물려받은 후손 이야기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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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주인은 3-4세대 정도일 텐데 차이나타운과 붙어있는 월스트릿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 기준으로 자녀들의 성공은 전문직이나 금융쪽 비중이 높은데 이 분은 그런 면에서 성공했던 거지요. 다만 본인은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다는데 이분의 근무지가 바로 무역센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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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에 현장에 있었고, 운 좋게 살아서 빠져나왔지만 그가 겪었을 트라우마는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결국 삼촌이 하던 이 식당을 물려받아 옛 것을 그대로 살리면서 젊은 감각으로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궁금해서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맘 편하게 조금 일찍 갔을 뿐인데 이렇게 엄청난 줄을 서는 집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오픈런 행렬에 서게 됐네요.

정시가 되자마자 직원이 문 열고 손님 받기 시작합니다.

싱글 다이너라고 이렇게 구석 창가의 명당을 배치받았습니다.^^

중국집 양념 세트.

평소 좋아하는 것 위주로 시켰는데 미국이란 걸 깜박했습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같으면 저렇게 시켜도 혼자서 다 소화 가능한데...

젊은 주인이 굳이 고수하고 있다는 옛날식 화장실. 좀 좁고 불편하긴 한데, 그리고 아주 깨끗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어쨌든 멀쩡한 화장실입니다.

주인장이 소년 야구선수 출신이거나 팬이거나 그런 모양입니다. 열심히 서포트하고 있네요.

2017~18년 뉴욕과 롱아일랜드 최저임금표가 붙어있는데 이유는 무엇일까요? 롱아일랜드가 뉴욕보다 최저임금이 1~2달러 낮습니다. 그리고 팁 받는 업소의 임금은 최저임금보다 2~3달러 낮습니다. 요즘 문제가 된 미국의 팁 문화 문제점을 거론하는 '엉터리 잡학박사'들은 팁 업소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3분의 1도 안 된다는 식으로 아무말 대잔치를 하더군요. 자료는 검색만 해도 나오는데 몇십년 전 수치로 왜곡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요.

딤섬 집에서 있으면 꼭 시키는 새우 창펀입니다.

이건 군만두. 중국 군만두는 취향에 따라 실패와 성공 비율이 반반입니다. 너무 뻑뻑하게 고기만 있어서 이건 실패. 결국 이건 반입만 먹고 나머지는 포장해 왔습니다.

딤섬의 대표선수 격인 하가우. 창펀도 새우인데 이 하가우는 새우가 터질듯합니다. 중국보다 두배는 큰 것 같아요.

나오자마자 뜨거운 상태로 먹어야 했던 소롱포 사진이 없네요. 소롱포도 중국 이외의 국가에선 의외로 실패 확률이 높아서 별 기대 안했는데 솔직히 중국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의 유명 소롱포도 조금 냄새가 나는데 이 집은 냄새 전혀 못 느꼈습니다. 고기 상태에 따라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초생강을 기본으로 주지 않는데 종업원이 하도 바빠서 물어볼 엄두도 못 냈습니다.

군만두는 fried여야 할 것 같은데 fired로 찍혔군요^^ 불에 지져 하는 것은 똑 같으니 재밌으라고 그랬을까요?

딤섬은 조금씩 시켜먹는 재미가 있는데 이 집 양이 대단해서 메뉴 두개 정도도 충분히 배부를 것 같습니다. 저도 양이 적은 사람은 아닌데 결국 남은 거 포장해 왔습니다.

20세기 초기 이민자들이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백인들이 사는 교외 지역으로 이사를 나가서 뉴욕 차이나타운도 점점 구성비가 달라집니다. 코리아타운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샌프란시스코의 재팬타운은 이름만 재팬타운이지 일본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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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스의 플러싱도 90년대는 한인타운으로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중국세가 훨씬 더 강하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했던 까닭에 한인타운도 대체로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80-90년대 한국인 식당이나 가게도 찾기 힘들던 유럽 도시에서 차이나타운은 그래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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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못해 중국제 라면이라도 살 수 있었고, 삼발이나 두반장 같은 칠리소스로 매운 맛 대리만족이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중국 마켓도 김치는 기본이고, 고추장, 된장 다 구비되어 있어 해외여행 가서 한국 마켓이 없다면 중국 마켓 가면 다 해결됩니다.

차이나타운 한 가운데의 공원. 우리나라 탑골 공원 역할을 합니다. 노인들이 모여 잡담을 하거나 사행성 게임(?)을 즐기는 곳입니다.

그 한가운데는 손문 동상이 있습니다. 손일선, 손중산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명은 손얏센입니다.

좌우로 나뉜 중국에서 양안이 공통으로 국부라고 모시는 점은 부럽습니다.

차이나타운에서 길만 건너면 있는 리틀 이태리로 가 봅니다. 차이나타운보다 먼저 생긴 리틀 이태리는 그래서 그 정체성이 더욱 옅어졌습니다. 이태리에서 온 여성 유튜버가 이 동네 상가를 돌아다니며 이태리어로 말을 거니까 대화 가능한 이가 거의 없는 상황이더군요. 오히려 다른 국가 출신자가 전 주인에게 배운 이태리어로 떠듬떠듬 대화 시도를^^

제가 방문한 곳은 E Rossi라는 잡화점입니다. 이곳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식당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독특한 잡화점이라고 소개한 곳이라서 관심이 갔습니다. 창쪽 전시물은 전부 종교 관련 성물들인데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더 의미가 있겠습니다.

재밌으라고 만든 경고판이겠지만 요즘 기준에서 보면 차별이라고 원성 들을 문구들이네요. 영화 <대부> 시절이라면 뭐 저러고도 남았겠네요. 그런데 가게 문이 견고하게 닫혀 있습니다. 혹시 장사를 안하나 싶어 봤더니 아마 점심 시간이라 문 닫아놓고 간 것 같습니다. 동네에 주인 혼자 하는 가게라서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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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은 꽤 유명한 식당 같은데 워킹투어하는 관광객들로 바글댑니다.

돌아온다는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안 오길래 오늘은 운때가 아닌갑다 싶어서 가려는데 딱 봐도 주인장 같은 분이 오십니다. 보조 보행기를 사용할 정도로 다리가 너무 불편하고, 건강 상태도 매우 안 좋아 보입니다. 그냥 걱정이 돼서 아무 거나 사 가기로 하고 가게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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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 사진은 찍기가 그래서 한장도 없는데 한국 시장통의 온갖 잡동사니 쌓아놓은 만물잡화점 느낌입니다. 종교 관련 물품을 비롯해 이태리 축구팀 관련 상품들, 그외 자질구레한 주방용품 등이 제대로 정리 안 된채 먼지가 수북하니 놓여 있는데 솔직히 깔끔한 진열을 자랑하는 미국 가게 중에서 이런 곳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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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이상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은 힘겨운 몸짓으로 카운터에 겨우 앉으시는데 여기저기 쌓아놓은 물건들 부딪힐까봐 보는 제가 조마조마하더군요. 그리고 불만섞인 목소리로 "이 동네 관광객은 잔뜩 오는데 저 투어가이드들은 우리집에는 오지도 않는다"라고 투덜대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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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처음 방문인 제가 봐도 단체 손님이 들어와서 돌아다니기 힘들만큼 통로가 좁기도 하고, 정리도 안 되어 있는 먼지 쌓인 물건에 관광객 흥미를 유발할 아이템도 얼른 눈에 안 뜨이는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겠더군요. 어릴 때 이 곳을 들락날락하며 장난감이나 성당 물품을 샀을 이들에게는 추억이라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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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사드리고는 싶은데 하도 살게 없어서 I love NY라고 적힌 맥주잔 몇개를 샀습니다. 주인장만큼 나이 든 여성이 포장해 주겠다며 신문지를 꺼내는데 그 동작도 하도 불안해서 제가 하겠다고 둘둘 말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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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기력이 안 좋아보이고, 더위에 지친게 역력해 보여 뭐라고 말 걸기도 안타까운 심경이었습니다.

그날 저 말고 손님이 있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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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제게 선물이라며 그림엽서를 한장 주셨는데 1911년 사진인가 그럴 겁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하던 가게인데 이 역사적 사진 속에 있다구요.

저도 노년에 가까운지라 이런 어르신들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나중에 유튜브를 다시 검색해 보니 그렇지 않아도 이 가게 폐점 우려하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가게 살리기 펀딩 같은 것도 하는데 놈와 식당처럼 맡아서 할 젊은 세대가 없다면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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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 명물로 유명한 가게여서 예전 동영상도 제법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꽤나 건장한 이태리 아저씨 느낌인데 이곳도 코로나로 큰 타격을 받았군요. 주인장 인터뷰에 의하면 몇년 전 몸이 안 좋아져서 가게를 닫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아내가 자기가 도와줄 테니 계속 하자고 해서 운영해 왔답니다. 그런데 그 아내분이 코로나 때 돌아가셔서 가게가 저렇게 방치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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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도와주는 여성분도 비슷한 연령대라 가게를 치우고, 정리하고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겠지요. 포장도 힘겹게 하는 수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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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눈 밝은 사람들 중에는 저런 가게에서 희귀한 아이템도 찾고 하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저는 더위에 지치고, 탈진하는 바람에 뭔가 탐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저런 가게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쯤 방문해서 먼지구덩이 속 보물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소호 어느 리커샾 진열장에 대표선수로 나와 있는 한국 소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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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한국 위상의 변화는 이런 사소한 물건들에서 실감합니다.

뉴욕대 근처까지 와서 겨우 커피 한잔. 커피샾은 어딜 가나 기나긴 행렬이어서 맥도널드나 던킨 같은 패스트푸드점 외에 커피 전문점에서 제대로 마시기는 이때가 처음입니다.

학교 앞이라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이 많아서 느긋하게 앉아 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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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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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여디가 네이버 카페 원문을 읽고 정리한 요약입니다. 전문과 댓글은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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